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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호 / 모음곡 ♧♣

멋져.김 2012. 12. 2. 17:11

 

                    ★★  배  호 / 모음곡 ♧♣

 

      1.물방아고향             2.마지막 잎새            3.막차로 떠난여인           4.만나면 괴로워

      5.망 부 석                6.먼  여  로                7.배  신  자                   8.백  마  강 

      9.비내리는 명동거리   10.비겁한 맹세            11.비내리는 경부선         12.사나이 연가

     13.산속의 오두막집    14.생일없는 소년         15.서울의 밤거리            16.선       창

     17.센티멘탈 쟈니       18.순     정                19.울고넘는 박달재         20.울어라 열풍아

     21.잊어야할 사람       22.잊을수가 있을까      23.잊지못해                  24.지평선은 말이없다

     25.파란낙엽              26.황성옛터               27.못잊어서 또왔네         28.나하나의 사랑

     29.낙      엽             30.남강의 비가            31.남원의 애수              32당신은 가고

     33.동숙의 노래          34.두메 산골               35.둘만의 사랑길           36.아빠 품에

     37.잊을수없는 연인    38. 0시의 이별             39.먼  하늘                   40.갈대의 순정

     41.검은나비              42.결혼각서               43.경상도 나그네            44.고     엽

     45.고  향  초             46.고향하늘               47.과거는 흘러갔다         48.굳  바  이

     49.그대만의 부르스     50.그때 그메아리         51.기적슬픈 새벽길         52.꿈

                                                                                                  53.꿈꾸는 백마강 


 


배호(裵湖) 1942년 4월24일 출생 ~ 1971년 11일 7 일 사망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난 배호(본명 : 배만금)는

 서울 창신동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친의 사망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부산의 이모의 모자원에서

 부산 삼성중학교 2학년을 1학기를 수료했다.

 1956년 5월 음악을 하기위해

서울로 상경 막내 외삼촌 김광빈를 통해 드럼을 배우기 시작 음악에 입문해

1958년 1년만에 드럼을 마스터하고 1960년 부평 미군부대 관할 클럽

등에서 2년간 악단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하였다.

 1963년 김광빈 작,편곡의 '굳바이'등을 발표하면서

 배호(裵湖)라는 예명을 가지게 된다. 1964년 낙원동 Prince 카바레에서

밴드 마스터로 픽업되어"배호와 그 악단"

이란 이름으로 12인조의 풀 밴드 구성하여 드럼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장안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두메산골'등을 발표하였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누가 울어" "안개속으로 가 버린 사랑"등을 대 희트시킨데

 이어 "안개낀 장충단 공원" 이 연속 힛트함으로써 인기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굳혔으며

 1968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과 더불어 왕성한 가수활동 시작하여

'안녕'등.. 희트 시켰고 특색있는 음색으로 주옥같은 번안곡을 부르면서

최고의 인기가수로  KBS, MBC, TBC등 주요 가요 가수상을 휩쓸었다.

 1969년, 공개방송, 업소출연, 지방공연 등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이 재발해 입원중 12월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시에는

 동료가수(이상렬 등)의 등에 업혀 출연 청중들을 숙연하게 한 가운데

청중들로부터 쾌유를 비는 감격스러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1970년 봄부터는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서울 시내 극장무대를 시작으로

 다시 공연활동을 시작 했다. 그해 연말 MBC TV 10대 가수상

 수상에는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관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1971년 병세의 악화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치료하면서도

 그의 마지막 곡들인 "0시의 이별" "마지막 잎새"등을 취입하였다.

 죽어도 무대에서 쓰러지겠다는 초인적인 의지로 극장, 업소 등의 무대에 섰으며,

 어떤 때에는 음악만 틀어 놓고 무대에서 그대로 서 있기도 하였다.

1971년 10월 20일 MBC '별이 빛나는 밤에'(진행:이종환) 출연을

끝으로 감기 증세와 함께 신장염 악화로 세브란스 병원 입원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메다가 11월 7일 더 이상 가망이 없자

퇴원 미아리 집으로 가던중 완전 의식불명 그날 저녁 9시 45분경 자택에서 운명하였다.

 1971년 11월 11일 예총회관(현 세종문화회관) 광장에서 가수협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 경기도 장흥소재 신세계 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삼각지 로타리' '안개낀 장춘단공원' '비내리는 명동거리' '마지막 잎새'등..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노래들을 부렀던 절절한 호소력에

신기의 목소리의 배호는 지금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심금을 울린다.

 <보네온 메일에서 옮김>